「十鹿九回頭」彫石
玉蘭院から築山を通って「十鹿九回頭」彫石のところに来られます。それは、仏教の話につながった彫石となっているが、明清を経て、また民間で長い間伝わっているうちに、松江歴史的伝説を代表する石となってきました。そして、松江歴史的遺留品の中で、特に重要な価値を有するものです。その石刻の浮彫りが、方形となり、辺長1メートルで、画面に勇健たる鹿が10匹走り回っている姿は、真に迫って生き生きしています。その10匹鹿の中で、9匹が振り返って同一方向をみているが、1匹だけ違う方向へ向いているので、清嘉慶年間、松江府志に、「物事するに完全していないことが十鹿九回頭だ。」といった記載があります。しかし、民間ではこう解釈したのです。松江は、元々魚米の郷なので、官職のため外出する人が、十人の中に九人が故郷を懐かしく思うから、帰ってくるのだということです。発音上で鹿は禄と同じなので、俸禄でやっている人でも、十の内八か九が豊かな故郷へ戻ってくるだと言って、「十鹿九回頭」」が故郷を懐かしく思って、落ち葉が根元に帰するという意味に取られたわけです。その石刻は、最初、松江普照寺前の石橋の横に置かれたが、お寺が取り外された後で、「雲間第一楼」へ移され陳列に出し、その楼が崩壊後になって酔白池へ移されました。(少しやや長い時間をおいてから結びの言葉に入りましょう)
Stone carving of “Nine Deer Look Back Among Ten De
Through a rockery cave behind Magnolia Court, stone carving of “Nine deer turning Heads Among Ten Deer” is in front of you. It tells the Buddhist stories. However, in the Ming and Qing Dynasties, it reflected the history and legend of Songjiang under long-term interpretation by common people. It has particularly i-m-p-o-r-tant value in historical stone carving relics across Songjiang. This stone relief features square shape and side length of 1 meter, which depicts ten vigorous running deer, which look vivid and lifelike. Among these ten deer, nine deer look back at the same direction, and only one deer look at another direction, hence “Nine Deer Look Back Among Ten Deer” is named after. According to Annals of Songjiang Prefecture in Jiaqing Period of the Qing Dynasty: “Nine Deer Look Back Among Ten Deer refer to those people failing to make a good ending”. But it is generally considered that Songjiang used to be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Most of officials serving in other regions were all homesick, and finally returned home. Deer is a homonym for “wealth” in Chinese language, which means that people who depended on official’s salary certainly went back to affluent hometown. So “Nine Deer Look Back Among Ten Deer” become synonymous with nostalgias for hometown and returning to their native region. This stone carving work was initially e-m-b-e-dded in standing stone beside the stone bridge next to Puzhao Temple in Songjiang. After the demolishment of temple and stone bridge, this stone carving work was relocated to “No.1 Building in Yunjian” for display, and then it moved to Drunken Bai Pond after the destruction of “No.1 Building in Yunjian”. (with a long blank time left before concluding re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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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란원에서 한 가산동굴을 가로질러 가면 ^십록구회두^석각에 이르게 됩니다. 이 석각은 불교 전설을 반영하였지만 명청시기 민간의 오랜 연구를 통하여 송강의 역사와 전설을 반영하는 석각으로 거듭났습니다. 송강의 역사 유물 중 이 석각은 아주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각형으로 된 이 석각 부조의 길이가 1미터이고 10마리 건장한 꽃사슴이 뛰는 모습이 생동감 넘치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 10마리 꽃사슴 중, 9마리는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돌아보고 있는데 오직 한 마리만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하여 ^십록구회두^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청나라 가경 송강부 관청 일지에는 ^업무 수행에 완벽하지 않는 사람을 십록구회두라고 함^이란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이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송강은 본시 토지가 비옥하고 자원이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벼슬하러 외지에 간 사람들 중 십중팔구가 고향을 그리워하여 고향에 돌아왔답니다. 사슴 ^록^자와 녹 ^록^자의 발음이 같으므로 국가 봉록을 받는 사람들 중 대부분 부유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십록구회두^로 고향에 대해 그리움이 남아있고 고향에 돌아간 사람들을 비유하였습니다. 이 석각은 최초로 송강 보조사 앞에 놓인 석교 옆의 입석에 상감되었는데 사당이 철거되면서 석각이 ^운간제일루^에 진열되었다가 이 건물이 훼손된 후 취백지로 옯겨진 것입니다. (오래 머문 후 맺음말 시작할 것)